차종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맵시였던 것 같다.
나는 1976년생이니, 아마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일 것이다.
부산이 우리 집이었지만 아버지의 고향은 강원도 두메산골이었다.
지금처럼 길이 잘 닦여 있던 때도 아니었다.
아이 넷을 태우고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가는 길은 지금 생각하면 꽤 먼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길에서였는지, 개울인지 도랑인지 옆에 맵시를 세워놓고 아버지가 본네트를 열고 있던 장면이 기억난다.
차가 퍼졌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차 앞에 서서 무언가를 살펴보고 계셨다.
요즘처럼 휴대전화로 정비소를 부를 수도 없었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까운 카센터를 찾을 수도 없던 시절이다.
부산에서 강원도 산골까지 아이 넷을 태우고 달리다가 차가 멈추면, 아버지는 일단 본네트부터 열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고, 할 수 있는 건 직접 해보고, 다시 차에 올라탔을 것이다.
장거리 여행을 갈 때면 아이가 넷이라 교통경찰에게 걸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정원이 문제가 됐던 모양이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경찰에게 “다들 국민학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이에요.” 하고 설명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맵시나의 본네트를 열고 서 있던 아버지가 얼마나 난감했을지,
넷 아이를 태우고 먼 길을 운전하는 일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어린 나는 그런 사정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차를 타고 가며 길가에 서 있던 키 큰 미루나무를 세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세월이 지나고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되고 나니,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개울 옆에 멈춰 있던 맵시.
열려 있던 본네트.
그 앞에 서 있던 아버지.
그리고 자갈밭과 개울가에서 장난치던 우리 네 남매.
그때는 그냥 지나간 하루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준 한 장면이었다.
글 완희·편집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