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2

내 삶의 배경 어딘가에

먼저 간 친구를 추억하며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친구였다.친구의 부모님은 환경미화원이셨고, 나이 터울이 꽤 나는 누나가 셋 있었다.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의 직업을 가지고 아이를 놀리거나 무시하는 일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벌어지곤 했다.친구도 “너희 부모님 쓰레기 청소하시잖아” 같은 말을 듣곤 했다.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가 놀림거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린 친구에게는 꽤 큰 상처였을지도 모른다.그래서였을까. 친구는 주위에 많은 사람을 두는 편은 아니었다.하지만 나와는 죽이 맞았다.정작 내게 그 친구의 집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주택이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장 위에 수족관이 하나 있었다. 이끼가 잔뜩 낀 수족관 안에는 사람 손바닥만 한 금붕어가 살았다.얼마나 잘 먹였는..

카테고리 없음 2026.09.07

83번 버스를 기다리던 외할머니

빠른 74년생 큰형을 시작으로,75년 7월에 둘째 누나가 태어났고,76년 11월 끝자락에는 쌍둥이 막내로 내가 태어났다. 아버님은 참 호전적이셨다. 그렇게 아이 넷이 줄줄이 태어나다 보니,내가 아주 어릴 때는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시면서 함께 키워주셨다.어릴 때 사진을 보면 우리 쌍둥이 곁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아버님은 늘 외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손주, 손녀가 많으셨지만 우리 쌍둥이를 유독 많이 아껴주셨다.형은 무던하다고 ‘무던이’, 나는 촐랑거린다고 ‘촐랑이’라 부르셨다.할머니 품은 늘 넉넉하고 따뜻했다.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다.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정류소에는 외할머니가 서 계..

카테고리 없음 2026.09.03

오늘은 손을 잡았다

가끔 딸아이의 등교시간과 내 출근시간이 겹쳐 집을 같이 나서는 날이 있다.오늘 아침도 그랬다.웬일인지 딸아이가 먼저 손을 꼭 잡아주었다.평소 같으면 친구들이 볼까 봐 부끄럽다며 잘 내어주지 않는 손이다.기분이 참 좋았다.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횡단보도까지만 잡고 갈게.”딸아이는 괜찮다고 했다.그래도 학교로 가까워질수록 괜히 주변을 자꾸 살피게 됐다.혹시라도 같은 학교 친구가 지나가지는 않는지,평소보다 유난히 등굣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그렇게 손을 잡고 걷다가 학교 앞 횡단보도가 보일 즈음 내가 먼저 손을 놓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의 얼굴은 평소보다 밝았다.도덕시간에 부모님과 관련된 영상을 봤단다.보다가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울었다고 했다.친구들은 조금 의아해했다고 한다.그리고 집..

카테고리 없음 2026.09.02

밥상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 해가 돋아서야 두어 시간 잠을 청했다.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일하는 곳에 가서 잠시 일을 봤다. 아무래도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4시쯤이었다.수면 부족에 잠시 눈을 붙였다. 아들이 밥을 챙겨 먹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잠을 자는 듯 마는 듯하면서도 뭔 밥을 그리 오래 먹나 싶었다.눈을 떠보니 어느새 6시였다.밥상의 주인은 바뀌어 있었다. 하교한 딸과 아내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나는 그사이 두 시간을 푹 잔 모양이었다.잠에서 깬 나를 보고 딸은 반가운 듯 바라봤고, 아내는 말했다.“밥 먹으세요.”아내에게 아들이 뭔 밥을 그리 오래 먹나 했다고 말했더니 함께 웃었다.별것 아닌데, 괜시리 행복했다. 글 완희 · 편집 GPT

카테고리 없음 2026.08.24

양말 마크 하나가 머시라고?

요즘 아이가 브랜드 양말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 중학생 때의 내가 생각난다.그때 어머니는 면도 좋고 질도 괜찮지만 마크만 없는 양말을 사주셨다.어머니는 마크만 없을 뿐 같은 양말이라고 하셨다.어머니 눈에는 같은 양말이었지만 내 눈에는 상표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마크가 없다고 놀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괜히 보이기 싫어서 양말목을 돌돌 말아 내리거나, 마크가 있어야 할 부분을 일부러 접어 감추기도 했다. 그 나이에는 다들 비슷하지 않았을까. 친구들과 다른 것이 괜히 신경 쓰이고, 별것 아닌 마크 하나가 크게 느껴지던 시기였다.양말을 두고 투정을 부리다가 큰형에게 참 철딱서니가 없다고 혼났던 기억도 난다.그래도 그때의 내 생각은 단순했다. 같은 가격이면 짝퉁이라도 마크가 들어간 양말이 더 좋았다. ..

카테고리 없음 2026.08.23

올해도 많이 퍼지기를...

며칠 전부터 아파트 화단에 꽃대가 하나둘 올라왔다. 계절이 조금 이른데 벌써 꽃무릇이 올라오나 싶었다. 지난해보다 듬성듬성해 보였지만 아직 다 올라온 것은 아니겠거니 했다.오늘 보니 꽃이 피어 있었다. 그런데 붉은색이 아니라 분홍색이었다. 분명 지난해 이 화단에 핀 꽃은 붉은색이었는데 이상했다.지난해 찍어둔 사진을 다시 찾아봤다.날짜는 9월 25일이었고, 사진 속 꽃은 역시 붉은색이었다. 알아보니 지난해의 붉은 꽃은 꽃무릇이고 오늘 본 분홍색 꽃이 상사화였다. 같은 꽃인 줄 알았는데 서로 다른 꽃이었다.올해 처음 본 상사화가 생뚱맞게 먼저 피고 나니 아직 올라오지도 않은 꽃무릇이 생각났다. 지난해 꽃이 다 지고 난 뒤 화단을 살피고 계시던 할아버지도 함께 떠올랐다.꽃은 다 졌는데도 할아버지는 군락을 한..

카테고리 없음 2026.08.23

나도 그랬으니까, 딸을 보며

지금은 남녀공학이 흔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남중·여중이 대부분이었고 남녀공학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자연스럽게 이성 친구들과 어울리고 교류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다.그중 하나가 교회였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나는 교회를 꽤 열심히 다녔다.내가 다니던 교회는 날로 부흥하던, 꽤 열심인 교회였다.몇 년을 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나에게 교회는 뭐랄까, 또 하나의 학교 같은 곳이었다.형제, 자매.단어 자체가 따뜻하지 않은가.살갑게 챙겨주던 형과 누나들이 있었고, 모이기만 하면 마냥 즐거웠던 친구들이 있었다.학교가 끝난 뒤에도 교회에서 만나고,주말이면 또 만나고,예배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던가.그렇게 지내다 보니 믿음도 신앙생활도 어느새 내..

카테고리 없음 2026.08.17

신은 공평하다고 했던가 (결핍을 채우는 방법)

신은 공평하다고 했던가.이 꼭지에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 같은 면이 없잖아 있지만, 애정결핍이 어떤 쪽으로 채워졌는지를 한번 적어보려 한다.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느끼는 나는 유독 사람과 관계에 정성을 많이 쓰는 편이다.사람 이름을 기억하고, 예전에 함께했던 시절을 오래 붙잡고, 남들은 그냥 지나칠 만한 관계에도 혼자 의미를 부여한다.별것 아닌 대화도 기억하고, 사소한 디테일도 챙긴다.그러다 보니 마당발이라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을 좋아해서 그렇게 한 것인지, 사랑받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둘 다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후자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관계가 생기면 허투루 하지 않았고, 누군가 나를 찾으면 고마웠다.보자는 말을 들으면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았고,..

카테고리 없음 2026.08.16

나는 과연 부모님의 자랑이었을까?

아버지는 조실부모하셨다.그래서 나는 친가 쪽 조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친가 친척들도 대부분 강원도나 서울 등 멀리 계셨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봐도 친가 쪽 친지들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같은 부산에 사시는 이모할머님 정도가 떠오른다. 반면 어머니 쪽은 달랐다.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셨고 이모와 이모부, 삼촌, 사촌들도 참 많았다.돌아보면 외가 쪽에는 추억도 참 많다.외갓집 동생들은 참 영특했다.나와 나이 터울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 동생들이었다.아버지는 그런 조카들을 참 자랑스러워하셨다. 누가 일등을 했다더라.입학하는데 선서를 한다더라.좋은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받았더라...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사촌 여동생은 치과의사가 되었고, 남동생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성형..

카테고리 없음 2026.08.16

아버지에게는 맵시가 있었다.

차종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맵시였던 것 같다.나는 1976년생이니, 아마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일 것이다. 부산이 우리 집이었지만 아버지의 고향은 강원도 두메산골이었다.지금처럼 길이 잘 닦여 있던 때도 아니었다.아이 넷을 태우고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가는 길은 지금 생각하면 꽤 먼 여행이었을 것이다.그때의 나는 그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그러다 어느 길에서였는지, 개울인지 도랑인지 옆에 맵시를 세워놓고 아버지가 본네트를 열고 있던 장면이 기억난다.차가 퍼졌던 모양이다.아버지는 차 앞에 서서 무언가를 살펴보고 계셨다.요즘처럼 휴대전화로 정비소를 부를 수도 없었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까운 카센터를 찾을 수도 없던 시절이다.부산에서 강원도 산골까지 아이 넷을 태우고 달리다가 차가..

카테고리 없음 202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