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가 브랜드 양말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 중학생 때의 내가 생각난다.
그때 어머니는 면도 좋고 질도 괜찮지만 마크만 없는 양말을 사주셨다.
어머니는 마크만 없을 뿐 같은 양말이라고 하셨다.
어머니 눈에는 같은 양말이었지만 내 눈에는 상표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마크가 없다고 놀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괜히 보이기 싫어서 양말목을 돌돌 말아 내리거나, 마크가 있어야 할 부분을 일부러 접어 감추기도 했다.

그 나이에는 다들 비슷하지 않았을까. 친구들과 다른 것이 괜히 신경 쓰이고, 별것 아닌 마크 하나가 크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양말을 두고 투정을 부리다가 큰형에게 참 철딱서니가 없다고 혼났던 기억도 난다.
그래도 그때의 내 생각은 단순했다. 같은 가격이면 짝퉁이라도 마크가 들어간 양말이 더 좋았다. 면이 좋은지, 오래 신을 수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4남매를 키우셨다. 같은 값이면 마크보다 면과 질을 보셨고, 거기에는 어머니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어머니는 대학생이 되면 브랜드도 사고 멋진 것도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그때는 마크 없는 양말을 신어야 한다는 게 속상했다.
그런데 정작 대학생이 되고 나니 옷이나 브랜드에 별 관심이 없어졌다. 물욕도, 브랜드를 따지는 마음도 많이 사라졌다.
그래본들 양말이고 옷인데.
깨끗하고 깔끔하게 입으면 그만이었다.
그때가 되자 어머니는 오히려 아이들이 멋을 낼 줄 모른다며 속상해하셨다.
한 번은 그런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키우셨잖아요.”
그때는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을 들은 어머니도 참 속상하셨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양말이 큰 결핍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도 아니다.
결핍 아닌 결핍으로 남았다.
지금은 어머니의 마음도 조금 읽힌다. 4남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주면서 어머니도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고 지키셨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물건을 사주는 입장이 됐다.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떤 물건을 사줄지 나름의 기준을 두려고 한다. 브랜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원하는 것을 모두 사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중학생 때의 내가 떠오르고, 기준을 세우다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도 처음이셨고, 나름 밸런스를 맞춰가는 나도 처음이다.
부모가 되어보니 그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글 완희 · 편집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