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파트 화단에 꽃대가 하나둘 올라왔다. 계절이 조금 이른데 벌써 꽃무릇이 올라오나 싶었다. 지난해보다 듬성듬성해 보였지만 아직 다 올라온 것은 아니겠거니 했다.
오늘 보니 꽃이 피어 있었다. 그런데 붉은색이 아니라 분홍색이었다.


분명 지난해 이 화단에 핀 꽃은 붉은색이었는데 이상했다.
지난해 찍어둔 사진을 다시 찾아봤다.
날짜는 9월 25일이었고, 사진 속 꽃은 역시 붉은색이었다.



알아보니 지난해의 붉은 꽃은 꽃무릇이고 오늘 본 분홍색 꽃이 상사화였다. 같은 꽃인 줄 알았는데 서로 다른 꽃이었다.
올해 처음 본 상사화가 생뚱맞게 먼저 피고 나니 아직 올라오지도 않은 꽃무릇이 생각났다.
지난해 꽃이 다 지고 난 뒤 화단을 살피고 계시던 할아버지도 함께 떠올랐다.
꽃은 다 졌는데도 할아버지는 군락을 한참 들여다보고 계셨다. 궁금해서 “해마다 많이 퍼지는 것 같네요” 하고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맞다고 하셨다. 구근이 퍼지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꽃이 피었던 자리 주변을 정리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내년에는 또 얼마나 퍼질까 생각했다. 그렇게 손을 봐두셨으니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넓게 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다.
꽃무릇이 필 때쯤 그 할아버지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특별한 사이는 아니다. 지난해 화단 앞에서 꽃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다. 그래도 꽃이 피면 같이 바라보며 “많이 퍼졌네요”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같은 라인에 살던 다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면 자주 마주쳤고, 지나가며 인사를 하거나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늦은 밤 앰뷸런스가 왔고, 몇 차례 집에 돌아오셨다가 다시 병원으로 가셨다. 두어 달이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한동안 그 자리를 지날 때면 괜히 할아버지가 계시던 곳을 보게 됐다. 별 사이가 아니어도 자주 마주치고 몇 마디씩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도 일상의 일부가 되는 모양이다.
아직 꽃무릇이 필 때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올해 군락은 얼마나 더 퍼졌을지 궁금하다.
꽃이 필 무렵 그 할아버지도 화단에 나와 계시면 좋겠다. 같이 꽃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올해도 많이 퍼졌네요.”
그 정도면 좋겠다.
글 완희 · 편집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