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녀공학이 흔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남중·여중이 대부분이었고 남녀공학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이성 친구들과 어울리고 교류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교회였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나는 교회를 꽤 열심히 다녔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날로 부흥하던, 꽤 열심인 교회였다.
몇 년을 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나에게 교회는 뭐랄까, 또 하나의 학교 같은 곳이었다.
형제, 자매.
단어 자체가 따뜻하지 않은가.
살갑게 챙겨주던 형과 누나들이 있었고, 모이기만 하면 마냥 즐거웠던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가 끝난 뒤에도 교회에서 만나고,
주말이면 또 만나고,
예배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던가.
그렇게 지내다 보니 믿음도 신앙생활도 어느새 내 안에 시나브로 스며들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내 중·고등학교 시절을 버티게 해준 힘이기도 했다.
크게 엇나가지 않고 나름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토대라고 해야 할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꽤 건전한 커뮤니티였다.
나는 아쉽게도 예외였지만ㅎ 주변에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도 참 많았다.
그때는 그냥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교회 안에서 하던 일들도 학습의 기본과 꽤 닮아 있었다.
성경을 읽고,
예배에서 말씀을 듣고,
마음에 남는 구절을 붙잡고,
그 뜻을 생각해보고,
내 생활에 대입해보고,
생각을 적고 또 서로 나눴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듣고, 내 생각과 다른 부분은 또 한 번 생각해봤다.
지금 와서 보면 꽤 그럴싸한 학습이었다.
읽고, 듣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말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반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그런 걸 배운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냥 교회에 다녔고,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 안에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여튼 나쁘지 않은 기억이다.
요즘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둘째 딸을 보고 있으면 가끔 내 중·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친구들이 좋아서 가는 건지,
교회 사람들이 좋아서 가는 건지,
믿음이 좋아서 가는 건지,
그 이유를 굳이 따져 묻지는 않는다.
나도 그랬으니까.
처음부터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이 좋았고,
모이면 즐거웠고,
그러다 보니 믿음도 조금씩 따라왔던 것 같다.
둘째에게도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좋은 기억을 만들고,
읽고 듣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나누는 일도 자연스럽게 익히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마음이 조금 단단해지는 시간.
무엇 하나 억지로 얻으려 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이 시나브로 스며드는 시간.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글 완희 · 편집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