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조실부모하셨다.
그래서 나는 친가 쪽 조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친가 친척들도 대부분 강원도나 서울 등 멀리 계셨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봐도 친가 쪽 친지들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같은 부산에 사시는 이모할머님 정도가 떠오른다.
반면 어머니 쪽은 달랐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셨고 이모와 이모부, 삼촌, 사촌들도 참 많았다.
돌아보면 외가 쪽에는 추억도 참 많다.
외갓집 동생들은 참 영특했다.
나와 나이 터울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 동생들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조카들을 참 자랑스러워하셨다.
누가 일등을 했다더라.
입학하는데 선서를 한다더라.
좋은 대학에 가서 장학금을 받았더라...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사촌 여동생은 치과의사가 되었고, 남동생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성형외과 전문의를 하고 있다.
그냥 넘사벽인 거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랑스러워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자꾸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이 싫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항상 조심하는 것이 있다.
비교하지 않는 것.
누구네 아이는 어떻다더라.
누구는 공부를 잘한다더라.
누구는 좋은 학교에 갔다더라.
가능하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균형인 것 같다.
비교는 하지 않으면서도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을 것 같고, 조금 더 끌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참 어렵다.
모든 게 서툴다.
결혼도 처음이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처음이고,
하루하루가 다 처음이다.
최근에 친구 어머님을 뵌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친구와는 소통을 닫은 채 지내시는 것 같다.
그래도 아들 생각이 나거나 소소한 문제가 있을 때면 가끔 연락을 주신다.
미용실을 하시는데, 손님들에게 자식 자랑이나 자식 이야기는 금지란다.
아이러니한 게, 동네 미용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주말에 자식들이 와서 좋은 데 가서 밥을 먹었다.
아들이 용돈을 얼마를 줬다.
딸이 어디를 데려갔다.
나이가 들면 결국 자식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식 자랑 밖에 또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어머님께 농담처럼 말씀드렸다.
“어머님, 건강 챙기시려면 미용실 그만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요즘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첫째를 보면서 나는 요즘 시대에 학교가 꼭 필수는 아니고, 하나의 선택이고 옵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불편함 같은 게 있다.
결핍이라고 해야 할까.
비교가 아닌 비교를 나도 모르게 속으로 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에 대한 원망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서의 미안함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내가 제대로 못 챙겨서, 다들 다니는 학창시절조차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최근에는 가까운 친구의 딸이 인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축하할 일이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까운 친구들도 하나둘 자식 자랑을 시작하는 초입에 들어선 것 같다.
우리도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런 시기를 지나면서 속으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나는 과연 부모님의 자랑이었을까?
얼마 전 본가에 갔다가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문득 물었다.
“4남매 어떻게 키우셨어요?”
어머니는 애가 넷이나 되니 이것저것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고 하셨다.
도시락을 많이 쌀 때는 여섯 개까지도 싸셨다고 한다.
그리고 별 사고 안 치고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부모에게 자식은 꼭 무언가를 잘해야만 자랑인 것은 아닌가 보다.
잘 커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잘한 일이 있으면 또 그것대로 자랑하고 싶은 것.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조카들 이야기를 하셨던 것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늘 비교로 받아들였지만, 아버지는 그냥 잘한 조카들이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냥 비교가 아닌 자랑이셨다.
그리곤 나의 목표도 하나 생겼다.
아버지, 어머니처럼
내 자식들을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키워내는 것...
글 완희 · 편집 GPT